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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1세의 기억
저자 : 고민정ㆍ고경순 역
ISBN : 979-11-86167-31-1
발행일 : 2019-11-20
정가 : 35,000
쪽수 : 698

 재일 1세라는 말을 들으면 많은 일본인은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까? 애초부터 이런 호칭으로 불리는 이방인이 있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게 불리는 사람들이 지금도 바로 이 일본에서 살고 있다. 다만 이 책에 수록된 증언자 중 몇 분은 이미 세상을 등지고 고인이 되었지만.
그렇다면 왜 이런 무지가 생겨난 것일까?
프랑스의 저명한 중세 역사가 마르크 블로크는 유작인 『역사를 위한 변명』에서 시간 속에 존재하는 인간의 학문(역사학)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 안에서 블로크는 “현재의 몰이해는 운명적으로 과거의 무지에서 파생한다”라고 지적하고, 동시에 “현재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과거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이 또한 필시 헛된 일이 된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 석학의 말은 지금도 경청할 가치가 있다. 블로크의 말을 부연하면 재일 1세라는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존재조차 모르면서, 혹은 알고 있다 하더라도 어떤 사람들인지 확실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없다면 그들의 과거를 이해하려고 해도 그것은 의미 없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그들은 ‘민족적 소수자’이며 그러한 소수자로서의 역사와 그 심성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 한들 그것은 특별히 이상한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또한 굳이 말하자면, 그들은 사라졌어야 할 ‘역사의 거품’과도 같은 존재였으며 그 후손도 언젠가는 이방인이라는 흔적을 지우고 일본사의 국민 역사 속으로 섞여 들어갈 것이라는 냉소적인 견해도 성립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과연 그럴까? 소수자이기 때문에, 힘이 없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역사학의 변경이나 격리된 주거공간으로 밀어 넣어야 할 존재란 말인가? 아니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역사의 진실성이나 성실성은 세부적인 곳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즉, 조선과 일본을 넘나든 그들 재일 1세의 삶에는 20세기 동아시아의 ‘극단적 시대’의 음영이 극명하게 새겨져 있다.
망국과 종속, 유랑과 이산, 차별과 빈곤, 해방과 분단, 내전과 쿠데타, 민주화와 번영 등, 재일 1세의 삶에 수 없이 새겨져 있는 가혹한 역사의 드라마는 눈물 없이 이야기할 수 없다. 그들은 많은 것을 잃었고 동시에 많은 것을 얻었다. 그곳에는 역경을 극복한 인간들의 승리 이야기가 즐비하다. 그러나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은 아직까지도 ‘미완’의 상태로 남아있다. 왜냐하면 아직 한반도에서 통일코리아가 실현되지 않았으며 코리아와 그 역사도 그리고 재일 1세의 과거도 부서진 파편처럼 뿔뿔이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존재에 대한 무지는 대부분의 경우, 그와 같이 파편이 흩어진 상태가 오랫동안 계속되어 지금에 와서는 일상화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왜냐하면 우리들이 과거를 재구성하기 위해 도움이 되는 요소를 빌려오는 곳은 결국 일상의 경험이니까.
그렇다면 그렇게 흩어진 파편을 모아서 그들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건 가능할까?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역사학의 학술적 자료의 기준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블로크가 비평가 프랑수아 시미앙의 표현을 인용해서 말한 것처럼 과거와 현재의 인간에 관한 모든 사실의 지식이 ‘흔적에 의한 지식’에 있다고 한다면 흔적 속에 있는 것을 존재로 되돌리는 것이 역사학에 주어진 사명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건 오직 ‘증인들의 보고’뿐이라고 블로크는 말한다.
‘증인들의 보고’, 과연 이것을 구술사(역사)라고 바꿔 말할 수 있을까? 확실히 사람이 말하는 내용이나 기억에는 실수와 거짓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채록된 증언은 역사적 고증을 거쳐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착각해서는 안 된다. 먼저 사료를 섭렵해 잘 분석하고 그 진정성과 성실성을 확인, 비판한 후에 증언에 사료적 가치를 부여하는 게 아니다. 역으로 사람이 사료에 질문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사료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이 점에 대하여 블로크는 역사 연구에는 ‘먼저 정신이 있다’고 단언했다. 이 경우에 정신이란, 역사의 흔적을 나타내는 증언에 질문하는 포용력이라고 바꿔 말해도 된다. 만약 그러한 포용력이 없다면 우리들은 과거의 ‘연대기’에 사로잡힌 단순한 역사 고증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단순히 옛 기록을 더듬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것에 대한 이해능력’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구술사는 그것에 대해 확실하게 답해주고 있다. 왜냐하면 이 책에 수록된 재일 1세들의 증언은 그야말로 온몸으로 경험한 생생한 육성 기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육성은 ‘관념의 언어’로부터 미끄러져 나온 포장 된 언어가 아니다. 그것에는 신음과 울부짖음, 한탄과 분노, 슬픔과 기쁨이 넘쳐나고, 온 몸을 경련시키듯 밑바닥부터 쥐어짠 생생한 경험이 담겨있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에 적혀있는 재일 1세들의 증언에는 쓸모없는 잡담과 정반대되는 생명의 언어가 깃들어 있다. 설령 그들의 경험이 우리들의 머리에 새겨진 일반적 편견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나아가 무엇보다 재일 2세인 나는, 그들 재일 1세의 증언이 마치 내 역사의 일부, 즉 나의 피가 되고 살이 되었던 역사의 일부를 말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의 아버지며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구술된 내용은 내가 사료로 다룰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이미 그것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내 살과 뼈의 일부가 되어 있다.

들어가며_강상중

 

01.식민지의 한을 아리랑에 담아 전하다_강금순
02.조선에서의 삶과 일본에서의 삶_허임환
03.영화로 만들어진 해녀의 반평생_양의헌
04.누가 뭐라 해도 내 조국이 가장 아름다워요_이석현
05.속아서 홋카이도 탄광으로 강제연행당하다_성주팔
06.교회 셋을 지은 목사 부인_심효남
07.일하고 또 일하고, 그리고 일하고_강심선
08.강제연행 동포희생자의 유골을 모아 납골당 완성_배내선
09.영문도 모른 채 창고에 갇혔다가 홋카이도로_전보순
10.가족을 지키며_박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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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조선시장에서 코리아타운으로_홍여표
41.야간학교에서 받은 보물_천남필
42.의사가 되려고 했는데, 민족학교 교사로_고태성
43.내 마음의 훈장_김일화
44.참정권의 근본은 기본인권_이진철
45.나와 역사학과의 만남_강덕상
46.영혼의 숨결, 음악을 만나다_한재숙
47.재일여성의 김치 이야기_이연순
48.아동문학과 함께한 50년_한구용
49.한글소프트 개발의 선각자_고기수
50.저고리와 함께한 인생_석이향
51.재일을 위하는 일에는 변함이 없다_이달원
52.‘환상의 필름’을 소생시킨 기록자_고인봉

 

재일 한국ㆍ조선인의 발자취_고찬유
용어해설_고찬유
나오며_오구마 에이지
옮긴이 후기_고민정

역자


고민정
일본 국립지바대학교 국제교양학부 준교수. 학술박사, 전공 사회언어학, 외국인이주자 연구 등.

저서 『접촉장면의 언어학(接觸場面の言語學)』 외.


고경순
번역가, 제주신보 논설위원, 오사카경제법과대학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문학박사(계명대학교대학원 일본근대문학 전공).

번역서 『재일조선인의 문제』, 『제주4ㆍ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재일제주인 삶과 역사』, 『마을사람들이 세운 재일제주인 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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